토스카나의 포도밭을 걸으며: 이탈리아 와인 컨트리 여행기


토스카나의 포도밭을 걸으며: 이탈리아 와인 컨트리 여행기

9월 중순, 이탈리아 토스카나를 찾았을 때의 첫인상은 마치 르네상스 그림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플로렌스에서 렌터카를 빌려 키안티 지역으로 향하는 길, 창밖으로 펼쳐진 끝없는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들, 그리고 언덕 위에 자리한 중세 마을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정말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첫날: 산 지미냐노의 탑들과 베르나치아 와인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중세의 맨해튼’이라고 불리는 산 지미냐노였습니다. 14개의 탑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이 작은 마을은 13세기부터 시간이 멈춘 듯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산 지미냐노의 탑들 산 지미냐노의 중세 탑들이 만들어내는 장관

점심시간에 들른 ‘Osteria del Carcere’에서 맛본 첫 번째 현지 음식은 ‘리볼리타(Ribollita)‘였습니다. 토스카나의 전통 수프인 리볼리타는 하루 전에 만든 빵과 각종 채소를 끓여 만든 소박하지만 깊은 맛의 요리였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맛본 베르나치아 디 산 지미냐노 와인은 상큼한 산미와 함께 복숭아와 아몬드의 향이 느껴져 리볼리타와 완벽한 조화를 이뤘습니다.

둘째 날: 몬탈치노에서 만난 브루넬로의 깊이

다음 날은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로 유명한 몬탈치노를 찾았습니다. 이 작은 언덕 마을은 이탈리아 최고급 와인 중 하나인 브루넬로의 고향이자, 토스카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Fattoria dei Barbi’ 와이너리에서 참여한 와인 투어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19세기부터 이어온 전통적인 양조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이곳에서, 5대째 이어오는 가족 경영의 철학과 상가오베제(Sangiovese) 포도 품종에 대한 깊은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하 셀러에서 맛본 2018년산 브루넬로는 체리, 가죽, 담배의 복합적인 아로마와 함께 길고 우아한 피니시를 보여주며 왜 이 와인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토스카나 포도밭 몬탈치노 주변의 포도밭 풍경

저녁에는 몬탈치노의 중심가에 위치한 ‘Il Grappolo Blu’에서 또 다른 토스카나의 별미인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를 맛봤습니다. T본 스테이크를 숯불에 구워 소금과 후추만으로 간을 한 이 요리는 단순하면서도 고기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린 토스카나의 대표 음식입니다. 브루넬로와 함께 곁들인 이 스테이크는 정말 환상적인 조합이었습니다.

셋째 날: 시에나의 역사와 피엔차의 치즈

시에나에서의 하루는 중세 유럽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의 조개껍질 모양 구조와 만지아 탑(Torre del Mangia)에서 내려다본 시에나 전경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특히 두오모 대성당의 흑백 대리석 줄무늬 외관과 화려한 내부 장식은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오후에는 ‘르네상스의 이상도시’라 불리는 피엔차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에서 맛본 ‘페코리노 디 피엔차(Pecorino di Pienza)’ 치즈는 이번 여행에서 만난 또 다른 미식의 즐거움이었습니다. 양젖으로 만든 이 치즈는 숙성 정도에 따라 다양한 맛을 보여줬는데, 특히 트뤼플이 들어간 페코리노는 현지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과 함께 먹었을 때 그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마지막 날: 발 도르차의 일몰

여행의 마지막 날, 발 도르차(Val d’Orcia) 지역을 드라이브하며 토스카나의 상징적인 풍경들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따라 이어진 사이프러스 나무들, 그 사이로 펼쳐진 황금빛 밀밭과 초록빛 포도밭들은 마치 그림엽서 속 풍경 그대로였습니다.

해질녘 몬테풀치아노에서 바라본 일몰은 이번 여행의 완벽한 마무리였습니다. 언덕 위 와이너리에서 한 잔의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와 함께 바라본 토스카나의 석양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실용적인 여행 팁

교통: 플로렌스나 시에나에서 렌터카를 빌리는 것을 강력 추천합니다. 대중교통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와이너리와 작은 마을들을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습니다. 운전면허증 국제면허증 발급을 미리 준비하세요.

숙박: 아그리투리스모(Agriturismo) 숙박을 추천합니다. 포도밭이나 올리브 농장에서 운영하는 농가 민박으로, 현지 생활을 체험하며 훌륭한 조식을 즐길 수 있습니다. 1박당 80-150유로 정도입니다.

예산: 와인 투어는 25-50유로, 고급 레스토랑 식사는 40-70유로 정도입니다. 현지 마켓에서 치즈와 와인을 사서 피크닉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최적 시기: 9-10월이 가장 좋습니다. 포도 수확철이라 와이너리 활동이 활발하고, 날씨도 선선해 여행하기 적합합니다.

토스카나는 단순히 와인과 음식만의 여행지가 아닙니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전통과 문화, 그리고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작품 같은 풍경이 어우러진 곳입니다. 다음에는 꼭 포도 수확철에 다시 찾아 직접 수확 체험도 해보고 싶습니다.